2013. 12. 11. 15:59

송림

  맨 처음 이 한적한 곳에 뿌릴 내렸던 때를 떠올려 본다.

  이곳저곳 관리 되지 않아 시원시원하게 멋대로 가지를 뻗은 나무들. 간간이 들려오는 새소리. 모든 것이 자유로웠다.

  조용하고 사람 없는 시골에 정착하는 것이 내게 있어선 인생의 목표들 중 하나였다. 때문에 싼값에 매물로 나온 이 송림松林 터가 그런 내 기대에 부합하기엔 더없이 적합한 곳임을 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말이 귀촌歸村이지, 기실은 동면冬眠이 목적이었다. 그 누구도 내게 주목하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또 조용히 잠을 자고 싶었다.
  땅을 매입하자마자 곧장 설계도를 작성했다. 대학 시절 몇 번 건축 공사에서 일했던 것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다. 당시 인맥들 중 한 명이었던 최 선배를 핸드폰 전화번호부에서 찾아내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는 내 기억 속에 남은 목소리와 똑같은 그것으로 흔쾌히 도와주겠다며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섰다. 난 그의 그러한 패기가 과연 몇 세까지 이어질까 곰곰이 생각했다.

  그는 사흘 뒤 이 구석진 시골까지 내려와 직접 측량을 도왔다. 굴리는 형식의 자와 얇은 0.28 촉의 펜, 그리고 메모 패드. 그는 변한 것이 없었다. 그는 측량을 하다 말고 허릴 펴며 묵은 등걸들과 그루터기들은 뽑아내는 것이 좋겠다 말했지만 나는 막무가내로 그것은 아니 된다 고갤 저었다. 염퉁머리 없이 저보다 너덧 배는 더 산 노송들과 고사들을 차마 뽑아낼 수가 없었다. 결국 집터를 줄이고 또 줄였더니 예상했던(내지는 계획했던) 면적의 4분의 3이 채 되지 않았다. 최 선배는 혀를 끌 차며 앞뒤 꽉 막힌 이라 한숨을 내쉬었다. 집은 그러나 결국 설계도를 조금 수정해 착공 되었고, 얼마 뒤 완성 되었다. 그만 해도 1년이 걸렸다.
 

 


  저도 송림의 일부임을 주장하며 땅 위 10cm 정도를, 경토를 닮은 무람한 흙뭉지들이 얼기설기 덮고 있었다. 손톱 크기의 몽글한 그것들은 송수피처럼 붉다. 흙에선 퀴퀴한 낡은 책의 내음과 갓 눈을 뜬 싹의 소리가 났다. 새그무레하면서도 싱그럽다. 이 옥요함은 자연의 순리가 남긴 산물임에 틀림없었다. 손틈 새를 고요히 빠져나가는 누군가의 백골은 곱디 곱다.

  숲속의 이 2층짜리 작은 집이 준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최 선배는 망치를 닮은 공구를 들고 집안 곳곳의 기둥을 퉁퉁 쳐댔다. 빈 소리가 나면 속이 삭은 나무이니 집이 무너지기 전에 바꾸는 것이 좋다고 말하며. 그는 몇 년 전에 뒤지지 않을 만치 활달했다. 오히려 목청은 더 커진 것 같았다. 우리는 집 주위를 걷고 있다. 최 선배는 집의 반절에 걸쳐 있는 구릉지 께엔 기둥을 여럿 세워 바닥을 지지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나는 기둥이 드러난 곳을 바라보다 인상을 찌푸렸다.
 
  "차라리 커다란 나무 토막 하나를 박아 넣지 그랬어."
 
  구릉의 경사에 훤히 드러난 여덟 개의 기둥이 영 꼴볼견이다. 마치 묻혀있던 뼈가 드러난 것처럼.

 

  "그랬으면 네가 더 지랄 떨었을 게 눈에 선한데."
 
  내 타박에 그가 사람 좋게 웃었다. 하오의 햇살이 오른편에 그리메를 드리웠다. 나는 솜브레로를 닮은 챙 넓은 모자를 더욱 내려 썼다. 햇볕은 공격적으로 나는 물어뜯고 해체 내지는 분해시키려 들었다. 광자들은 모공 속으로 침투해 혈관을 타고 흐르다 끝내 심방으로 유입되어 전신으로 퍼져 나간다. 마치 독한 마취제 같다. 심박수는 점차 그 양을 늘여가고 있었다.

 

  "모자 뒤집어 쓰는 걸 보면 넌 아직 준비가 안 됐어."

 

  익살스러운 그의 말에 하하, 하고 선웃음을 터뜨렸다. 최 선배의 말마따나 나는 아직 이 모든 것들의 일부분이 될 채비가 되어있지 못했다.

 

 

 

  나는 노송의 굵은 삭정이에 세게 매듭지어 매달아 둔 그네가 좋다. 이미 죽은 가지이니 만큼 그들의 고통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퍽 매력적이었다. 그네의 몸뚱어리는 감람녹빛을 가진, 버려진 나무 벤치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습한 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중고품이어서 상태가 영 좋지 못했다. 의자의 왼쪽 귀퉁이에는 퍼런 이끼가 계곡의 매끈한 돌덩어리처럼 무성했으며 나무는 물러져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읍내 늙은 목수의 호의로 목공소에서 낡은 벤치를 건조시킬 수 있었다. 일주일가량 뒤 연락이 왔다.

  ─나무 잘 말라 뒀으니께 와갖고 가지 가리.

  틀니를 낀 노인의 발음은 치처럼 어눌했으나 이는 편견임을 안다. 그들은-마을 사람들은- 절제를 아는 나무 같았다. 굽바자와 돌담에 동화된 그들은 눈가의 주름마저 나이테처럼 자연스럽다. 나는 그들에게 아련함에 근이 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다.

 

 

 

  숲은 밤이 되면 어두워졌고 낮이 되면 빛이 들어 밝아졌다. 네온이 휘황한 도시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지 않은가. 최 선배는 집을 준공하며 나의 새 터전이 부럽다는 제 의견을 설핏 내비쳤다. 나는 그러나 도시에서 나고 도시에서 자란, 뼛속까지 도시인의 회백질 풍습에 절어 있는 사내였다. 최 선배가 보금자리에 대해 행동이 아닌, 의견만을 표명하는 데에 그쳤던 것은 그가 도시에 둥지를 튼 새였기 때문이고 그의 DNA에 각인된 '향도 염색체' 때문이었다. (물론 향도 염색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도시인들의 도시의, 도시를 위한, 도시에 의한 그 본능들은 그것으로 설명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나 또한 그와 같은 족속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나는 도시가 좋았다. 내가 그곳을 떠나온 이유라곤 자아실현을 위한 동면의 욕구가 정착의 본능을 훨씬 앞서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굳이 이 사실을 타인에게 알리지 않았다.

  나는 물들인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중요치 않다.

  내 직업의 전통성과 고적함을 고려해본다면 누군가는 의아하다는 기색을 내비칠 것이다. 나는 그러나 그네들에게 묻고 싶다. 천연염색가는 그네들의 머릿속에 든 그 우아함을 지녀야만 하는가. 양복 대신 한복을 입고 아파트 대신 한옥에 살며 하루종일 쪽물과 포들을 마주해야 하는가 나는 그네들에게 묻고 싶다. 나는 자연을 사랑한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나 자신이 자연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분리되고 동떨어진 또 하나의 개체일 수 밖에 없다. 때문에 더욱 악착같이 우짖는다. 나는 너희들의 일부다. 귀머거리 노송들은 들은 체도 하지 않은 채 그리도 매섭게 나를 내치곤 했다. 나는 이제껏 그들의 대답을 들은 적이 없다. 이사를 오고서 한 달 즈음이 지났을까. 나는 자연 대신 이 고즈넉하고 다채로운 시골 마을에 적응하고 있던 참이었다. 마을 노인들은 가끔 낡은 삼베 잠옷을 들고 내 작업실을 찾곤 했다. 그들의 눈에 나는 하루종일 작업에 몰두하는 인색한, 그러나 마음씨 좋은 마을 청년이었을 뿐이었다.

 

  "이기 물을 들일 수 있는 기가?"

 

  그들은 이염수를 담을 수 있는 대나무통과 그 덮개에 달린 대를 한두 번씩은 들추며 내게 그리 물었다.

 

  "네, 그럼요. 오늘은 무얼 가져오셨어요?"

 

  그 말에 그녀가 자줏빛 보를 펼쳐 보인다. 땀과 때에 절어 목덜미와 겨드랑이 께가 누렇게 변한 잠옷. 인간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그 역사들을 마주할 적마다 나는 흥분했다. 그러니까, 정말로, 발기했다.

  딸아가 선물로 준 긴데 한 5년은 됐다 안 카나.

  그렇게 말하는 하얀 머리의 노파는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켜켜이 접힌 주름 덕에 그녀의 눈은 마주할 수 없었다. 나는 그것을 받아들고 코에 갖다 댔다. 세탁을 하지 않았는지 제법 시큼한 냄새가 난다. 노파에게 일주일 뒤 다시 오시면 된다는 말을 건네고 잠옷을 개어 상자에 가지런히 담아 두었다.
  염색은 대개 한꺼번에 하는 편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꼭 일요일 오후 정해진 시간대에만 말이다. 때문에 같은 주에 그들이 내게 맡긴 옷들은 대체로 같은 색에 다른 무늬를 가지고 있었다. 이따금 나는 옷에 전사지를 이용해 노부부의 얼굴을 프린트해주기도 했는데 이 또한 반응이 좋은 편이었다.

  나는 그들의 작은 행복에 울고 또 웃었다. 작은 커뮤니티-네트워크-에선 모든 것의 전이가 빠르다. 갑의 송아지가 을네 개한테 물려 죽었다더라, 하는 소문이 퍼지는 데엔 30분이 채 걸리지 않고 병네 집에 쌀 몇 되가 남았다더라, 하는 소문들도 더러 있었다.

 

 

 

  요샌 젊은 삼사십 대들의 귀농이 늘어나는 추세지만 그들을 향한 마을 주민들의 관심은 사그라질 줄을 몰랐다. 나는 귀농을 한 것이 아니었지만, 트랙터를 몰 줄 안다. 얼결에 들린 마을 이장이 손수 내게 일러준 것이었다. 그것은 과한 호의였다. 그들은 절제를 알지만, 중용에 대해선 알지 못한다. 이웃 삼 척은 꼭 지키면서도 이가 중용임을 깨닫지 못한다. 나는 그런 사람들이 사랑스러웠다. 무지에서 기인하는 정감과 세월로부터 흘러온 지혜 따위의 것들엔 마성이 깃들어 있다고 난 믿는다.

  도시의 시멘트 빛과 인공적이고 자극적인 색채에 질려 있던 사람들은 나의 작품에 열광했다. 그것은 무지에서 기인하는 정감이 아닌 광란과 흡사했다. 나는 내가 인터뷰 되고 내 작품이 실린 매체들을 단 한 번도 접해본 적이 없다. 아니다. 딱 한 번 있었던 것도 같다. 맨 처음 인터뷰를 진행했던, 국내보다는 국외에서 꽤 인지도가 높았던 패션 잡지였다. 캐치프레이즈catch-phrase는 '30살 청년, 전통을 물들이다.' 혹은 그와 비슷한 문구였다. 물리지만 20대 초반에서 40대 초반의 여성들을 자극하기엔 딱 적절한 문구였다. '30살 청년'이 말이다.
  나는 패션에는 흥미가 없었고 그 잡지를 정기 구독하고 있지도 않았다. 그들은 그저 내 인터뷰가 실렸으니 한 번 읽어보라는 의미에서 그것을 내가 기거하던 아파트로 보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무려 4바닥(2장)을 차지하는 그 인터뷰의 4분의 1조차 채 읽지 못한 채 잡지를 덮어 바닥에 내던졌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내가 저런 말을 지껄였단 말인가. 그것은 일종의 경멸과도 같았다. 천연염색이란 그러나 시쳇말로 '돈이 되지 않는' 직업이었고 당시 생곌 유지할 길이라곤 내게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밖에 없었다. 무척이나 분한 현실이지 않은가. 그러나 본래는 다 그런 것이라며 몇 년 전 서거하신 스승님께서 말씀하셨다. 억울할 필요도 분할 필요도 없다 등을 두드리는 그의 주름진 손은 차가웠다.

  ─그래서 어찌 되고 싶나, 자네는?

  몇 십 세나 어린 제게 한사코 높임말을 쓰시던 분이셨다. 원래 전통을 지키는 일은 고독한 것이라는 말을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우리 전통을 지키자, 라는 그 말 한마디는 기실 예로부터 세뇌되어 깊숙이 박혀버린 것이 아닐까, 하고. 몸이 아닌 머리로만 깨우친 그런 유의 것들 말이다. 저조차 부정할 수 없는 것이었다. 모두가 위선에 절어 있었다. 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나와 스승님이 행한 것은 단순한 물리적 염색 행위가 아닌, 색을 되살리고 정신과 의미를 부여하는 신성한 종교 심성적 예술이었다. 그저 천쪼가리에 아름다운 색을 입히고 그것이 오래토록 보존되어 그네들의 찬사와 찬미를 받을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고개를 돌려 시계를 바라보았다. 한창 더울 오후 3시를, 시침이 막 지나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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