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2. 11. 11:52

[맥윌]

  "하지만 아저씨는 분명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웬디의 말에 윌슨 퍼시발 힉스버리는 손에 들고 있던 각설탕 조각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알토 플룻과도 같은 목소리를 가진, 자신을 응시하는 소녀의 동공은 허하게 비어 있었다. 아비게일이 사라졌어. 그때 우리가 본 것은 환상이었을까? 그녀는 한동안 처량한 목소리로 윌슨의 옷자락을 그러쥔 채 그렇게 중얼거리고 다녔었다. 윌슨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부두 인형을 만들기 위해 잘라냈던 수염은 다시 자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웬디도 그도 시간이 멈춘 것처럼 성장하지 않고 있었다. 알 수 없는 그곳에 떨어졌던-분명한 타의였지만- 것은 결코 꿈도 환상도 아니었다. 수염이 자라지 않는 것이라면 다행이다. 하지만 윌슨은 의심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끝없이 검은 입사귀가 나리는 언덕배기를 떠오르게 만들었다. 비어버린 웬디, 불타 죽은 윌로우, 어둠 속에서 사라진 위커바텀 부인, 죽지 못하는 웨스(와 벌루노맨시), 그리고…… 그리고 그는 연구실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웬디만이 이따금 그를 찾아올 따름이었다. 윌슨은 기다림을 알았다. 웬디를 그런 그의 무릎을 베고 잠이 들곤 했는데, 그럴 때면 윌슨은 손에서 연장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오필리아 그곳에 있니? 내 심장을 쪼아 먹는 저 까마귀 떼의 부리들을 치워내! 이 구멍은 내가 들어가기엔 너무 작은 것 같아. 저 돼지를 죽여! 그리고 피를 뿌려! 웬디는 꿈속에서 계속해 소리쳤고 맨 처음 윌슨은 그녀를 악몽으로부터 건져내다 지쳐버리고 말았다. 그는 웬디가 소리를 지를 때마다 웬디의 입을 막고 자신의 귀를 막는 대신 그녀의 삐죽이 튀어 나온 결이 좋지 않은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그러면 그녀는 이내 고롱이는 소리를 내며 다시 잠들었다. 맨 처음 맥스웰을 만났던 때를 떠올린다. 자신은 연구 중에 있었다. 터져나간 스포이드와 유리마저 녹이는 용액들이 즐비한 작업실의 공기는 혼탁하게 물들어 있었다.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신은 그의 꾀임에 넘어갔다. 애초에 그러지 않았더라면…… 그것을 가정하는 것은 이제와 무의미한 짓이 되어버렸으나 미련은 끊임이 없었다. 소녀들과 소년들의 목을 베고 피를 쥐어짜내는 것을 맥스웰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고목빛을 띠는 바닥은 기실은 코팅되지 않은 나무 바닥에 스미운 핏자욱이 만들어낸 빛깔이었다.

  조금 곤란해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그는 그렇게 말했다. 그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언제부터 자신의 작업실에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던 낡은 라디오는 나긋한 그의 음성을 실어 날랐다. 전파 따위가 줄 수 있는 감촉이 아니었다, 그것은. 결국은 웬디를 포함한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사실이 그곳에 있었다. 맥스웰을 자신들의 세계로 이끈 것은 다름아닌 윌슨 자신이라고. 이것은 그네들이 살아 숨쉬는 한 끝까지 지켜나가야만 하는 비밀이었다. 용서받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것을 용서해 줄 이는 그 누구 하나 없었다. 금지된 주술을 알려주도록 하죠. 윌슨은 손을 뻗었다. 금단의 사과는 색이 붉었고 달큰하기까지 했다. 지식에 굶주리고 기갈 들린 청년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기껏해야 사과를 얻기 위해 긍종하고 따르는 것 뿐으로, 그는 후에서야 자신이 그의 명령으로 만들어낸, 자행한 금지된 주술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맥스웰의 문Maxwell's Door. 맥스웰을 자신의 사냥터로 부르는, 앨리스의 토끼굴. 그곳은 자신이 들어가기엔 웬디의 말처럼 너무도 작았다. 윌슨은 그 문이 자신의 세계과 그의 세계를 이어주는 통로임의 확신하고 있었다. 그의 명령으로 홀린 듯 레버를 잡아 당겼던 때, 실제로 그가 보았던 것은 소름끼치는 맥스웰의 미소였고 광소였다.


  "어째서 그런 짓을 한 거지."


  윌슨은 어느새 티 테이블 위에 얼굴을 처박고 잠은 웬디의 얼굴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어째서. 어째서였을까. 그 악마의 농간에 어째서 우리들은 놀아난 것일까. 원래의 세계로 돌아온 후 조사해본 바로는 맥스웰은 맥스웰이 아니었다. 그는 무대 연기자인 평범한 사내였다. 그 사실이 더욱 두려이 다가왔던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평범한 영국인, 평범한 연기자. 그런 그가 결핍된 이들을 지옥으로 밀어 넣고 살아 남기를 강요했다. 지독한 그들의 적대자antagonist의 목소리가 귓가를 울리우는 것만 같아 머리를 쥐어 뜯자 사특한 속삭임이 들려온다. 익숙하다. 환청은 현실감이 있었다.


  "당신, 별로 좋아보이질 않는 군요."

  "그만 둬. 이젠 지긋지긋해."

  "환청이 아니라는 것을 이젠 인정해야될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빌어먹을 악마 새끼!"


  기어코 욕설을 토해낸 윌슨은 꿈질대는 웬디를 바라보곤 입을 다물었다. 괜한 소란을 피우고 싶지 않았다. 그는 이성적인 사람이었다. 등 뒤를 돌아봐선 안 돼. 소금 기둥이 되어 버릴지도 몰라.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은 무언가 다른 듯도 싶었다. 앙상하게 마른 손가락이 뺨을 간지럽힌다. 소름 끼치는 체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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