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2. 10. 14:05

강리

 강리. 성이 강이고 이름이 리. 사람들은 보통 강리나 강 선생님하면서 부른다. 시원시원하게 자른 머리카락. 약간 억센 턱. 짙은 검은 머리. 속쌍꺼풀에 폭이 좁고 위아래로 올망하게 떠진, 결코 크지는 않은 눈. 유약한 인상은 아닌데 전체적으로 강아지상. 피부는 적당하게 그을렸지만 시커먼 편은 아니다. 키는 아마 178cm 정도. 그래도 한국인 남성 치고는 그럭저럭 장신에 속하는데, 역시 본인은 별 생각이 없다. 사랑과 기대를 담뿍 받고 자라 타인에게 미움 받는 것에 썩 익숙하지 못하다. 웃으며 얼버무리고 일을 키우지 않기 위해서는 마음에 없는 사과도 수 천 번 수 만 번 그냥 하는 편. 자존심이 없다는 비약적인 설명보다는, 단순히 타인의 입에 제 이름이 오르내리는 걸 싫어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일이 커지고 귀찮아지는 걸 극단적으로 싫어하는 경향이 있는데, 정작 사건이 터지면 발벗고 나서기는 한다. 이 역시 근본적으로 보면 이 이상 귀찮아 지는 게 싫은 것 뿐. 문제는 본인이 사과받아야할 일도 건성으로 넘어가다보니─.

  개인적으로 굴릴 떄는 농촌에서 선생질을 하는 입바른 양반이었는데, 메이시어티브의 세계관에서는 선생질하다가 웃으면서 사람 쏴 죽이는 애가 됐다. 물론 입바른 설정은 그대로다. 사실 과거가 있는 캐릭터가 확실히 굴리기 편해서. 강리와 재민이 같은 경우에는 너무 무난해서 나조차도 못 겪어본 삶이라. 사랑 받은 걸 어떻게 얘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제일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정작 블로그에 조각글만 흩뿌려 놓고 정리를 한 기억이 없어서 일단 블로그에 올렸던 글들만이라도 모아둠.






1

  바로 그날 그의 눈 앞에서 자그마하던 그 새는 날아올랐다. 꺾여 버린 다리를 절뚝이며 끝내 추락해버린 그것은 마치 한 편의 신파극 마냥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다. 강리는 허하게 비어 버린 손을 옹송그려 가슴 께에 품었다. 그는 그렇게 단내 나는 한숨을 떨구어 내고 미련을 즈려 밟아 흩뿌리었다. 어디선가 짹짹이는 소리가 들려오이다. 어디선가, 어디선가. 강리는 마침내 뒤돌아 서 파란색의 페인트가 녹에 절어 깔딱이는 제 집의 대문을 향해 달리었다. 짹짹, 짹짹. 참새인지 종달새인지 알 수 없었던 그 새는 계속해서 비명을 질러대었다. 강리는 소리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대문을 걸어 잠그고 창호지 발린 문을 젖혀 열어 들어갔다. 쌔액쌔액 소리가 요란했다. 들어왔나? 어디선가 제 어미 저 찾는 줄도 모르고, 강리는 그렇게 한참을 불 뗀 아랫목에 수굿하여 눈을 감고 덜덜덜 떨어댔다. 강리는 주머니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목이 부러져 죽어버린 새새끼가 아직도 그곳에 있었다.

 

 


2

  껄떡껄떡. 뒤축 나간 검정 고무신에 아픈 발을 강리는 구태여 내색하지 않고 꾸욱 참아낸다. 조오기 건넛집 덕진의 악다구니에 퍽 놀라 띤 가슴도 한 몫을 했다. 흘러내린 핏물을 닦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어기적어기적 밀어 연 대문에선 끼익끼익 참아주기 힘든 소리가 났다. 매미가 울고 땀방울이 몽울지고 더펄가히가 짖는다. 강리는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이 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 어쩌면 자신은 꿈을 꾸고 있는 지도 모른다. 덕진이와 싸운 것이 꿈일지도 모른다. 아아. 그러나 그는 결국 떠올리고 말았다. 이제 내일 어떡하면 좋나. 덕진이 놈의 엉덩이를 힘껏 걷어 차면 좋을까? 웃으며 등짝을 후려칠까? 코에선 뚝뚝 여태껏 핏물이 떨어지고 있다. 강리는 그렇잖아도 흙먼지에 엉망이 된 하이얀 티샤쓰에 뻘건 코피가 둥글둥글 자리 잡아 가는 것이 퍽 염려스러웠다. 이제 강리는 덕진이 놈을 잊는다. 제 어미에게 내뱉을 변명 한마디가 강리에겐 절실하였다.

 

 


3

  감각感覺. 명사. 사물에서 받는 인상이나 느낌. 바깥의 어떤 자극을 알아차림. 간단한 이야기다. 뭐야, 이건. 하얀색 마우스 커서가 닿은 검색창이 틱이라도 가진 듯 쉼없이 깜박인다. 지루하고 고리타분하기 짝이 없는 시간이었다. 단어 옆의 스피커 버튼을 누르자 늘어진 고무줄 같은 목소리로 성우가 단어를 발음한다. 가암─각. 강리는 턱을 괸 채 빼딱한 시선으로 간헐적으로 커서와 함께 명멸하는 모니터의 화면을 바라본다. 손끝에 닿는 마우스의 무기질적인 버튼은 고장이 나 검지에 힘을 주고 꾸욱 눌러야만 달칵하는 소릴 내며 클릭이 된다. 짜증이 나 무선 마우스를 집어 던지고서야 아차하고 호들갑을 떨며 마우스를 보듬었다. 이게 무슨 꼴이람.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빼고 강리는 방 안을 둘러본다. 엉망이다. 이곳저곳에 쌓여 있는 편의점 도시락과 노오란 테이프를 붙여 연명하고 있는 빨랫대, 연결 부위가 고장나 골든버그 장치처럼 기묘한 각도로 선을 뒤틀어야 불이 들어오는 핸드폰 충전기도 죄다 정상적이라 말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굳이 멀쩡한 걸 꼽으라고 한다면 며칠 전 서혁이 고쳐주고 간 앉은뱅이 책상뿐이었다. 본래 허리띠를 졸라매고 사는 편이긴 했지만 학생 시절엔, 그러니까 적어도 부모님이 살아 계실 적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성인이 되어서까지 부모에게 손을 벌리고 살았느냐를 책망 받는다면 솔직히 말해 딱히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자신이 벌 수 있는 돈은 최소한의 생활비 정도였고 오피스텔도 학비도 모두 부모님의 돈이었다. 서혁은 못질을 하면서도 가재도구들 꼬라지를 보며 기함을 토해냈지만 지금의 강리에게 허투루 쓸 수 있는 돈이란 없었다. 보험사 측에서는 부모님의 사고 이후 제법 면밀한 조사를 나왔고 마지막엔 부모님의 죽음을 자살로 몰아가며 보험금을 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거기다가 부검 결과는 자살이나 사고사라 칭할 수 없을만치로 애매모호함 투성이였다. 아니, 사고사는 틀림 없었다. 그렇게 1년 정도를 보험사와의 싸움으로 허비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땐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 그 싸움이라는 것도 제법 일방적이었던 탓에 법학과와 의료 계열에 아는 사람이 없었더라면 시간은 시간대로 돈은 돈대로 나갔을 상황이었다. 부모님의 핸드폰 요금 고지서나 연금 우편물 따위가 집 우편함에 그득 꽂혀 있는 것을 보았을 때의 기분은 거지 같았다. 국문학과생의 머릿속에 그런 단어밖에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거지 같아서 사람이 화가 나면 말이 나오지 않는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 장학금을 받던 대학은 학비가 아니라 심적인 문제를 들먹이며 반 년을 남긴 채 자퇴하고 말았다. 불알 친구랄 것까진 없지만 오랜 친구여 왔던 서혁과 대학에 올라와 3년이라는 기간을 사귄 1살 연상의 여자 친구는 자신을 뜯어 말렸으나 강리는 반쯤 넋이 나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강서혁이와 그때의 여자 친구가 제법 괜찮은 인간이었던 건 알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은 그때 자신을 더 격렬히 말렸어야 했다. 강리는 키보드에 머리를 박았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실업자와 실업 예정자 많고 일자리는 부족하다. 방금 '감각'이라는 단어도 고용 사이트를 뒤지다 찾은 '감각적인-' 따위의 카피 문구에 커서를 올렸다 툴바에 저장된 국어 사전이 대뜸 팝업 창으로 뜬 것뿐이었다.


  "병신도 이런 병신이 없지."


  자퇴가 아니라 휴학을 했어야 했다. 차라리 조금 더 버티다가 졸업 예정자가 됐으면 취직이 더 쉬웠을 거다. 자퇴 신청이 이걸로 세번째라 재입학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정신머리가 깨지든 말든 몇 천 원 되는 학비 내고 대학에 붙어 있어야 했는데. 이제 와 후회한들 어쩔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속이 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4 Messiative

  "무슨 일이라도 있어?"


  아마데우스의 물음에 강리는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별 일 없어요. 그런데 왜 그렇게 죽상이야? 새로 사귄 여자 친구가 마음에 안 들어? 너무도 그다운 물음이었다. 섹스는 커녕 키스조차 하지 않은지 근 2년이 넘어가는데, 여자 친구 따위가 있을리만무했다. 더군다나 이런 근무 환경에서 교제 관계를 유지해나가는 것 또한 고행일 것이 뻔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강리는 세 명의 여자 친구와 적어도 번갈아가며 일주일에 한 번 뜨거운 밤을 보내는 아마데우스를 존경할 용의가 있었다.


  "팬셔가 갈궈요. 진짜 미친듯이 갈군다니까요?"


  봇물 터지듯 시작된 상사의 험담에 아마데우스는 허리를 숙이며 은근한 목소리로 팬셔의 비밀을 알려줄까? 라며 속삭인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인간한테 비밀이고 약점이고 무슨 소용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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