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2. 11. 16:07

The Prototype

  현계에 과연 인격체라 명명된 존재들만큼이나 혐오스러운 것들이 또 있을까. 만일 그렇다 함은 바로 그것이 새로운 비극의 도래이자 또다른 시발의 종극이 될 터였다. 함몰되어 제 형태를 온전히 유지하지 못하는, 계집아의 안구가 워켄의 손을 떠나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또로록또로록. 그것은 너무나도 선명해 부정치 못하는 존재였다. 워켄은 프로토 타입의 등에서 손을 떼고 허리를 숙여 그것을 주워 들었다. 무기질적이기 그지없는 유리알. 주조된 소녀들이 세상을 마주할 방도는 다만 그뿐이었다. 그는 창조자였지만 소녀들이 이 유리 눈알을 통해 어떠한 세상을 바라보는 지 알지 못했다. 안타깝지는 않다. 그것은 그녀들이 이고 가야할 짐이었으니까.

 

  "닥터."

 

  옹송그린 프로토 타입의 등 위로 긴 머리칼이 흐드러졌다. 그녀는 아기가 고롱거리듯 옹알였다. 뼈대만이 남은 얇은 두 손으로 정결한 투피스 드레스의 등 후크를 푼 그녀는 하이얀 등을 드러낸 채다. 물론 등뿐만이 아니었다. 붉게 드러난 상처가 흑백의 세계에서 고고하게 제 자태를 뽐냈다. 기괴하게 뒤틀린 팔이며 거죽 위로 허옇게 도드라진 갈비뼈 따위가 욕지기가 치밀만치로 역겨웠다. 그녀가 앉아 있는 선단 위로 금세 붉은 피가 스멀스멀 퍼져나갔다. 워켄은 여상한 손길로 그녀의 등 위에 검지를 미끄러뜨렸다. 아파. 아파, 닥터. 아파요. 가녀린 목소리가 애처롭게 울기 시작했다.

 

  『너무도 인간적이어서 생리적인 혐오감을 일으켜.』

 

  ─언젠가 그를 떠나간 동료들이 남긴 말이었다.

 

  『너는 결코 인간을 만들 수 없어, 닥터 워켄.』

 

  그것은 저주이자 희미한 오만 그리고 질투 따위가 뒤엉킨 더러운 감정이었다. 워켄은 그러나 그들과는 달리 결코 자신의 창조물에 기대하지 않았다. 인간을 모방한 메커니즘의 자동 인형은 어디까지나 무생의 존재로서 그 어느 곳에도 발을 디딜 수 없는 존재여야만 했다. 그녀들은 인격체가 되어선 아니 되었다. 그는 자신의 손으로 창조해낸 새로운 죽음에 그런 식의 종지부는 결코 찍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너무도 불쌍하지 않은가. 하얀 장갑이 프로토 타입의 상처를 헤집으며 파고든다. 그녀는 숨을 들이켰다. 아아. 일그러진 신음 소리가 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비명을 지를 수는 없었다. 닥터를 화나게 할 수는 없다. 때문에 프로토 타입을 부들부들 떨리는 입술로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던 와중 갈비뼈를 쥐어 잡혔다.

 

  "닥터, 아파."

 

  그녀의 고통은 그러나 인지의 차이일 뿐이다. 겉켜 뿐인 그 통증은 쉬이 사그라들 터였다. 워켄은 손을 뻗어 소녀의 등 속에 엉긴 라인들을 잡아 뽑아냈다. 프로토 타입은 입술을 앙다문 채 눈물을 흘렸지만 호곡성을 내뱉지는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해야할 일을 무척이나 안타깝게도 자각하고 있었다. 프로토 타입은 입을 벌린 채 잠시간 호흡하려 몸부림쳤다. 그러나 이내 실이 끊어져 모든 것을 품에서 놓아 버린 마리오네트처럼, 그녀가 앞으로 힘없이 무너져 바닥에 머리를 찧는, 퍽하는 끔찍한 소음이 워켄의 귀를 울렸다. 그녀의 체내에 저장되어 있던 체액이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정말 '봇물처럼.' 리놀륨 바닥 위로 깐작하니 점철된 핏자욱이 점점더 퍼져나갔다.

 

  "너에게는 죄가 많구나."

 

  워켄은 프로토 타입의 하나 남은 눈을 감겨주며 가동열조차 느껴지지 않는 그녀의 차가운 뺨을 쓰다듬었다. 마치 연인을 대하듯 다정한 손길이었다. 그녀의 종말은 애잔했다. 팔을 뜯기고 안방이 함몰되고 등에는 뼈를 발라내는 자상이 새하얗고 순결했던 신체에 남겨졌다. 수리를 해보아야 그녀의 인공 뇌 내에 저장된 개발 목적-자해를 통한 자가 개발-이 삭제되지 않는 이상 그녀는 또다시 그 비참한 도전을 계속해 나갈 것이었다. 그것만은 막아주어야 했다. 때문에 워켄은 그녀를 버릴 수밖에 없었다. 연구실 내에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그녀에게 그는 너무도 많은 죄를 지었다. 그에겐 그러나 창조를 위한 파괴, 다름 아닌 그것이 필요했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Cristallonotte  (4) 2013.12.12
Hortalitium  (0) 2013.12.11
송림  (0) 2013.12.11
프로그램 "아발론"  (0) 2013.12.11
[맥윌]  (0) 2013.12.11
Posted by 토박

블로그 이미지
토박

태그목록

공지사항

Yesterday
Today
Total

달력

 « |  » 2024.5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