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2. 12. 14:39

프로그램 "아발론"

  뻑뻑한 눈을 애써 슴벅였다. 안구 뒤편이 무겁게, 또 지독하게 아려왔기에 나는 다시 눈을 감을 수 밖에 없었다. 귓가에선 가느다란 흐느낌이 울리었다. 그 흐느낌의 주인공은 굳이 고갤 돌려 바라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때문에 나는 그 울음을 듣고선 시덥잖은 감상에 빠지기 보단 수십 번은 해왔던 푸념을 누차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또 실패다. 입술 새로 나직한 한숨이 삐져나왔다. 애써 힘을 내 말라 비틀어진 삭정이처럼 앙상하기 그지 없는 손을 들어 울고 있는 유이든의 손목을 붙들었다. 내 손등엔 바늘이 꽂혀 있었다. 누리끼리한 색의 포도당 수용액이 튜브를 타고 흐르다 혈관에 침두하는 것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내 손길에 그녀는 황급히 두 손에 파묻었던 고갤 든다. 그리고 발작하듯 소리쳤다.

 

  "정신이 들어? 벨? 벨!"

 

  쨍그랑하고 거울이 깨지는 것 같은 외침이었다. 나는 유이든의 손목을 붙들었던 손으로 귀를 틀어 막으려다 혈관 속에서 오묘한 각도로 틀린 바늘에 살갗을 찔리는 바람에 작은 신음을 내뱉을 수 밖에 없었다. 더럽게 아팠다. 괜찮아? 그녀가 물어 오는 바람에 나는 작게 고갤 끄덕였다. 미간은 여전히 펴지 못한 채 말이다.

 

  "걱정했어."

 

  유이든은 격정적으로 내뱉었다. 그녀의 눈가가 붉게 달아 오르는 것을 확인한 나는 난감한 미소를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그녀의 반응에 괜스레 코끝이 시큰시큰했다. 발갛게 물든 눈이 결국 눈물을 떨구어 낸다. 나는 손을 뻗어 유이든의 눈초리에 매달린 눈물 방울을 조심스레 훔쳐내었다.

 

  "벨, 정말로 걱정했어. 네가 눈을 뜨지 못하는 게 아닐까 정말로 무서웠어! 오, 제발 다시는 이러지 말아, 벨!"

 

  나는 누구보다도 네가 소중해, 벨. 애처로운 목소리로 그녀가 속삭였다. 금방이라도 부스러질 것처럼 다정한 목소리였고 때문에 더욱 안타까웠다. 나는 그녀에게 약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이든은 그런 내 속내를 아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계속해서 나의 대답을 재촉하고 있었다. 응? 벨? 벨? 나는 말없이 사랑스러운 나의 약혼녀를 품에 안았다. 그녀가 얼굴을 묻은 오른쪽 어깨 께가 눅눅하게 젖어 드는 것이 느껴졌다. 팔에 더욱 힘을 주어 그녀를 껴안자 손등의 튜브를 타고 피가 역류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결국 혀를 한 번 끌 차곤 그녀를 품에서 놓아 주었다.

 

  "괜찮아, 벨? 미안해."

 

  괜찮아, 너무 걱정하지 마. 나는 그렇게 말하려고 했으나 결국 입을 다물고 말았다. 어째선지 유이든이 이 이상 나의 거짓말을 믿어주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몇 번 고물고물 혀를 굴리다 어줍잖은 대꾸를 내뱉을 수 밖에 없었다.

 

  "인간은 이 정도로 죽진 않아, 유이."
  "그래, 그렇겠지."

 

  유이든은 키들거리며 침대 위로 털썩하고 쓰러졌다. 그래, 그럴 거야. 그녀가 눈을 감은 채 중얼거린다. 나는 그 목소리에 묻어난 수마를 알아채곤 그녀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늘 환하고 단정히 손질되어 있던 그녀의 머리카락이 칙칙하게 가라앉아 있음을 알아챘다. 배냇물도 채 마르지 않은 갓난아기가 옹알이듯 유이든은 무어라 알아 들을 수 없는 말들을 연신 중얼거렸다. 만일 그녀가 이제껏 나를 간병하느라 이리도 지쳐 버린 것이라면 나는 할 말이 없다. 그녀의 앞에서 나는 언제나 죄인일 수 밖에 없었다.

 

  "잘 자, 유이든."


  나는 그녀의 정수리에 입을 맞추었다. 약간 짭조름한 맛이 나긴했지만 크게 개의치 않기로 한 채 나 또한 베개에 머릴 뉘였다. 얼마나 눈을 뜨지 못한 채 있었는지 알 수 없었으나 유이든의 반응으로 미루어 보아 저번보다는 덜 했던 모양이었다. 한 사나흘이 되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고갤 저었다. 고롱고롱하고 유이든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조금은 망연한 기분으로 고갤 들어 천장에 석고가 발린 채 고정되어 있는 내 오른쪽 다리를 바라보았다. 분명 기괴하게 비틀려 뜯어져 나가는 것을 내 눈으로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본래의 제 자리에 자리하고 있는 오른쪽 다리는 이제 두렵지 않았다. 약간의 회의감과 함께 나는 눈을 감았다. 이대로 잠들어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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