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2. 9. 11:11 떠듦

131209

  블로그를 쓰기는 쓰는데 혹시 몰라서 티스토리 하나 새로 팠다. 연성은 여기로 동시에 올라오지 않을까 싶음. 짜증나는 일이 있어서 본진 아예 옮길까도 생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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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박

2013. 12. 9. 10:58

[레그멜키] 안락사

Euthanasia

131120

Written by Jeongyeon

Redgrave X Melchior

 

 

 

 

 

  수많은 것들이 있었다. 메르키오르는 그것을 가능성의 세계라 명명했다. 여인은 그것을 몰랐고 무구하고도 윤택한 가능성 속 존재하는 저들을 찾는 것만으로도 그는 퍽 벅찼다. 그와 레드그레이브가 함께 존재하는 시대의 가능성은 유한했으나 무한했다. 레드그레이브는 그 끝을 알았기에 그것을 유한하다 명명했고 메르키오르는 일말의 희망에 남은 제로섬 게임에 그것을 무한하다 이야기했다. 그들을 정정해줄 이들이 더 이상 남지 않은 세계에서 그들은 그렇게 믿고 싶어 하는 듯도 보였다. 다직해야 더께처럼 결백치 못할 그의 이야기가 소소한 말장난에 그쳤던 것에 반해 레드그레이브의 언어는 진실이 되었고 규칙이 되었다. 배양된 생명체가 있었고 갈빛 머리의 소녀가 있었고 차분한 미소를 띤 여인이 있었다. 그들은 갇혀버린 머릿속에서 수없이 상처받고 수없이 괴로워 한다. 그곳에는 언제나, 또한 소년이 있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바란 것은 그녀의 연인이 존재치 못할 세계였다. 셋은 좋지 못해. 그와 그녀가 이루어질 수 있는 세계가 아닌. 그것이 극단이었고 오판임을, 그 가능성을 찾아 헤맨 메르키오르 그 자신조차 자각할 수 있었다. 행복해질 수 없어. 이루어질 수조차 없잖아. 그는 레드그레이브의 발치에서 어리광부렸고 그녀만이 미미하게 웃었다. 아니야.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어. 끝끝내 그녀는 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 세계에서는 으레 비극이 일어나곤 했음을 메르키오르는 알고 있었다. 메르키오르? 야살스러운 체 레드그레이브가 장난스러이 웃었고 메르키오르는 고개를 들었다. 참없이 망쇄하는 세계가 그곳에 있었다. 이건, 분명한 잘못이야. 균형이 어긋나고 말아. 메르키오르. 과오를 모집는 목소리는 결코 매몰차지 않았다. 되려 상냥하고 하나한 친절을 품고 있다. 그것이 가장 그를 비참케 하는 것이었다. 레드그레이브. 메르키오르는 자신이 울고 있다고 생각했다. 왜 그래? 대답. 돌아오는 대답. 네 목울대를 타고 흐르는 목소리. 또다시 네가 죽었어. 그는 자수했다. 그럴 리가. 그래서 나는 너를 대신할 존재를 찾고 싶었어. 저런. 나즉한 목소리로 그녀가 웃는다. 밤꾀꼬리가 지저귄다. 하얀 침상 위 식어버린 몸뚱어리가 한스럽다. 그곳에는 그라이바흐가 없어. 그렇다면 그건 이 세계겠구나. 레드그레이브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까무룩 죽어가는 듯, 검고 검은 잎사귀가 바람에 너울거리듯 파르르 그녀의 입가의 미소가 떠오른다. 여전히 아름답다. 메르키오르는 다시금 더듬대며 입술을 연다. 그리고 내가 바라는 것도 없어.  아아, 메르키오르…… ─눈을 감은 후 지금의 나 또한 없어지는 게 아닐까. 그러니 그녀는 또다시 그 말에 서글프게 웃었다. 그라이바흐는 무엇을 듣고 있을까. 아니, 그는 존재치 않을 터였는데, 분명. 분명히. 레드그레이브는 꼭 그를 알고 있는 것처럼 굴었다. 메르키오르는 그녀의 품속을 파고들었다. 너절하게 늘어뜨린 두 팔이 제 것 같지 않았다. 눈을 감은 여인의 옆모습에 수심 깊은 정적이 맴돌고 메르키오르는 그녀의 코 아래 손가락을 대 숨결을 느끼었다. 충족되지 못할 서글픔만이 그의 얼굴 그득했다. 스테이시아. 네. 내가 없을 가능성을 찾아줘. 스테이시아는 말이 없다. 고독한 가능성을. 저주받을 가능성을 찾아줘. 나를 사장시켜. 그녀만이 존재하는 세계를 찾아내. 메르키오르는 딱딱한 베개에 고개를 처박았다. 그녀만이 존재하는 세계에 나를 묻어. 그녀의 발치에. 그녀의 결 고운 머리채 위에. 나를 매달아줘. 그는 계속해 중얼거린다. 레드그레이브를 보고 싶어. 이런 가짜가 아니야. 모든 것을 아는 그녀가 보고 싶어. 길을 바라. 레드그레이브. 스테이시아는 기계적으로 이어지는 그의 말에 대답만을 반복했다. 네. 네. 네. 네. 네. 메르키오르는 눈을 감았고 레드그레이브는 개면한다. ……─메르키오르? 소용돌이치듯 그들은 침잠했다. 메르키오르는 그것이 죽음이라고 생각했다. 수많은 죽음 속에서도 그는 레드그레이브를 포기하지 못했다. 그것은 비참한 동화였고, 그녀를 향한 서정적 염오였다. 응. 메르키오르는 다만 중얼거렸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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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박

To Appear Out Of The Blue

131208

Written by Jeongyeon

Browning X Walken

 

 

 

 

 

  ─그는 자신을 사장하기 위해 돌아왔다. 이 이야기는 그 문장으로 귀결된다.

  도시는 음울한 잿빛에 침잠되다 못해 엄몰되어 있었다. 이유 모를 안개가 교량 위 뭉그적 피어나는 것도 같았다. 설상가상으로 흩날리기 시작한 엷은 빗방울에 남자는 결국 구겨진 서류를 코트 속으로 밀어넣었다. 물비린내가 도처에 진동한다. 쑤시는 허리로 남자는 곧 소낙비가 올 것임을 예견했다. 비가 오면 거리의 사람들은 줄어들테고 거리의 사람들이 줄어들면 가게들이 문을 닫겠지. 아마 꽃집도 팻말을 뒤집어 걸 것이다. 그러면 자신은 빈 손으로 집에 들어가야할테고 연인은 여전히 화를 풀지 않은 채 문을 걸어 잠그고 제 할 일을 할 것이다. 불행한 회색, 불행한 비. 불행한 기억. 이런 날 만큼은 기어들어가도 괜찮을텐데. 남자는 그렇게 생각했다.
  비탈길은 백합 문양이 그득했다. 언제부턴가 존재하다 차마 사라지지 못한 채 잔류한 세월흔이었다. 시선의 끝에 머무는 둑을 높다란 파수탑이 꼴아보는 상이고 그 주위에는 빈민가가 있었다. 남자는 가시를 세운 고슴도치처럼 주위를 둘러보다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구둣발은 소리가 없었다. 그러고보니 퉁명스러운 배웅을 받으며 거처를 나섰을 때 제 손에 서류 가방 같은 게 들려 있었던 것도 같았는데, 언제부터였을까. 사라진 것이. 또, 옆구리. 날붙이가 선뜩했는데. 그러니까…… 남자는 신경질적으로 수염이 빼죽한 게 강퍅한 턱을 쓸어본다. 면돗날. 아. 아니다. 그는 그제야 시덥잖은 날붙이보다도 써느러웠던, 제 연인의 무기질적인 두 눈을 기억해냈다. 결코 이제까지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건만 그는 그의 얼굴을 기억해내야만 했다. 그러다가 남자는 입술을 벌리며 멍청하게 신음했다. 아. 그게 다였다.
  등 뒤의 거리에는 아직까지 사람들이 넘쳐났는데, 반대편의 후미진 골목길은 사람이 없었다. 응집된 음울이 그곳에 굴러다닐 것만 같았다. 남자는 절룩이는 걸음으로 구석에 처박힌 집의 마당으로 들어가 구석에 난 작은 쪽문을 들어열었다. 비쩍 곯아버린 사냥개가 안광만을 형형히 빛내며 남자에게 덤벼들었다. 하지만 짖을 기력조차 없는 것인지 그르렁대는 소리뿐이다. 남자는 저 개의 주인이 아직까지 녀석을 식탁에 올리지 않았다는 것이 외외로 신기했다. 계십니까? 의례적인 질문 후에 남자는 없는 대답에도 개의치 않고 구석진 다락으로 곧장 올라갔다. 그가 걸음을 옮길 적마다 오래된 나무 바닥이 요란히도 울어댔다. 비명 같기도 했다. 나무 바닥은 습기를 먹어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보풀 같은 곰팡이가 천장 한구석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다. 바닥의 먼지도 켜켜이 쌓여 있어 도무지 사람이 얼마 전까지 지냈던 곳이라곤 아무도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심지어 방금 누군가 드나들었으리라고도.

  남자는 자신이 이곳으로 향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마침내 방 앞에 멈춰섰던 때, 남자는 닫힌 나무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금전과도 같이 허울 뿐인 두드림은 아니었다. 적어도 남자는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답은 없다. 결국 돌아가려고 몸을 틀었는데 문이 소리없이 열렸다. 마치 어서 이곳으로 들어오라는 듯. 남자는 둥그런 문고리에 검지를 가져다 대 쓸어보았다. 차가웠다. 작은 손길에도 문은 그러나 쉬이 열리고 만다. 방의 전경이 남자의 두 눈에 훤히 들어찼다. 남자는 한 걸음 물러섰고, 그러자 모든 것을 더욱 잘 볼 수 있게 되었다.
  방 안은 누군가와도 같이 정갈했다. 커튼은 싸구려 린넨이었고 책상도 정돈되지 못한 못이 튀어나와 꽤 위협적으로 보였으나 전체적으로 부조화를 이루고 있지는 않았다. 남자는 조심스럽게 구둣발을 뻗어 방 안으로 들어섰고 자신의 발치에서 일어나는 먼지를 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문 뒤 행거에 걸린 코트를 발견했다. 흔해빠진 천자락이었으나 정체만은 명확했다. 남자가 언젠가 자신의 연인의 어깨에 걸쳐주었던 것이었다. 남자는 손을 뻗어 코트를 쥐었다. 풀먹은 깃이 버석이며 손 안에서 구겨진다.
  찾았으니 이젠 돌아가야겠지.
  허청이는 발걸음을 돌리고서야 순서를 엇갈린 사고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등 뒤의 열린 들창으로 예견한 소낙비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나무 바닥을 검게 물들이며 들이치는 빗줄기는 소란스럽다. 남자는 자신이 디디고 올라온 바닥을 응시했다. 물기에 검게 염되어 계단 칸칸이 검은 발자국이 그득하다. 의아함에 남자는 코트 속으로 손을 집어 넣어 자신의 옆구리를 살금 건드려본다. 흥건한 것이 만져진다. 남자는 팔을 들어 손가락을 펼쳤다. 그리고 제 눈 앞에서 천천히 흔들어보았다.

  아아, 아무래도 물비린내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남자는 이미 검은 빛깔을 띠기 시작한 제 옆구리를 그제서야 내려다보았다. 산화된 피가 끈적였다. 엷은 막이 상처의 위를 덮고 있었던 탓인지 작은 손길만으로도 이내 피를 쏟아낸다. 남자는 행거에서 집어든 코트로 제 옆구리를 동여맸다. 질끈 너덜해진 소매를 동여 묶는 순간 작은 침음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지만. 상처를 자각하자 밀려오는 통증은 퍽 가식적이었다. 남자는 미끄러지듯 벽에 등을 댄 채 주저앉고 만다.

  자신에게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었던 것인지조차, 그는 여전히 기억하지 못한 채였다. 사내는 어느날 갑자의 그의 삶 속에 등장했다. 조직이나 타인을 통해서도, 심지어 남자의 필요에 의해서도 의도된 만남이 아니었다. 문자 그대로 어느날 어느새 시나브로 스미어 있던 이는 이따금 협착한 방구적의 좁은 들창 밖을 응시하며 중얼거리곤 했다. 언젠간 이렇게 되어버렸겠지. 그로선 무책임한 이야기였고, 검푸른 머리카락이 마치 결궤된 바다처럼 흘러내리는 것을 남자는 바라보았다. 남자는 그의 옆모습으로부터 고개를 돌렸다.

  사내는 하이얗게 표백된 가운을 늘 걸치고 있었으나 합법적인 의술을 행하는 이는 아니었다. 이런 구석 바닥이 늘 그러했듯 하지만 그를 필요로 하는 이들은 언제나 차고 넘쳤다. 그는 대가를 원치 않아했기에 더욱 적호했고 사람들은 그런 그가 가벼운 발걸음을 옮기기 전까지만이라도 그에게 안주했을런지도 모른다. 그런 사내가 떠났다는 사실은 뒷골목의 알 나간 전구처럼 티미한 감흥만을 사람들에게 남기었을 따름이다. 남자는 기억 없는 사내의 이름만을 알았다. 이름. 이름? 이름. 티미한 감흥의 그 이름. 무의미한 이야기였다. 존재를 명명하는 것이 이름이라 이야기한들 저들에게 있어 이름이란 묘석에 줄 몇 자 그을 수 있는 핑계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사내는 불구하고 한참을 고민해 이름을 묻는 남자에게 너무도 쉬이 저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남자는 그에게 그 이름 두 자가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를 덕에 이별 이후 이따금 삼고하곤 했다. 사내에게 방을 내준 악독하고 그악스럽던 여주인조차 그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사내의 실종 이후 사흘이 흘러서였다. 애초 남자와 사내는 그리 달가운 연인 사이이지 못했던 탓이다. 공유하되 공유되지 못한 것뿐이라고 남자는 자위했다.

  서서히 힘이 빠져나가는 몸뚱어리를 저주할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부지중 저 또한 이곳으로 걸음을 옮겼을 뿐이었다. 천려에 젖은. 길들이는 것은 너무도 위험하다. 정착되지 못할 이들에겐 퍽 아찔하기까지 하다. 남자는 이를 악물었고 배를 움켜쥔다. 복통과는 확연히 다른 고통이다. 왈칵하고 견뎌내지 못한 핏물이 목구멍을 치고 올라온다. 예견된 비가 다시금 거세진다. 휘몰아치나 진정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남자는 이제 자신의 이름을 잊기로 한다. 언젠가 상상했던 죽음의 형태였으나 그는 결코 그것에 깊은 감동을 느끼지 못할 것임을 스스로도 직감했다. 그는 서서히 미끄러진다. 질끈 묶인 코트를 함뿍 적신 검은 물이 이제 바닥으로 흘러내린다. 그것들은 죄 검게 변한 바닥 위로 감응했다.

  희미한 구둣굽의 소리가 들려오는 듯 싶었다. 남자는 희망에 찬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가 그림자진 바닥으로 시선을 다시금 떨어뜨린다. 서늘하게 식어가는 몸뚱어리 위 유일하게 따스한 것이 체액임은 기이한 모순처럼 느껴졌다. 남자는 서서히 고개를 젖힌다. 목울대가 도드라지는 비쩍 마른 몸뚱어리가 삭정이처럼 바스라지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 가늠하며, 될 수 있는 한 서서히. 조금 더 느릿하게adagio. 어두운 그림자가 그의 몸뚱어리 위로 여상스럽기 그지없던 손을 뻗는다. 브라우닝은 자신이 울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워켄─그리도 검게 젖은 더러운 손이, 사내의 결백한 옷자락을 붙잡았다. 남자가 웃었고─그리고─자신의 귀에는 퍽…… 으깨지고 마는 소음이.

 

 

 

  하얀 손이 창백하게 질린 손을 붙잡았고 사내가 그저 잠시간 울고 말았다.

  그는 시간을 잊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언젠가 그가 그리 방랑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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