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2. 9. 10:58

[레그멜키] 안락사

Euthanasia

131120

Written by Jeongyeon

Redgrave X Melchior

 

 

 

 

 

  수많은 것들이 있었다. 메르키오르는 그것을 가능성의 세계라 명명했다. 여인은 그것을 몰랐고 무구하고도 윤택한 가능성 속 존재하는 저들을 찾는 것만으로도 그는 퍽 벅찼다. 그와 레드그레이브가 함께 존재하는 시대의 가능성은 유한했으나 무한했다. 레드그레이브는 그 끝을 알았기에 그것을 유한하다 명명했고 메르키오르는 일말의 희망에 남은 제로섬 게임에 그것을 무한하다 이야기했다. 그들을 정정해줄 이들이 더 이상 남지 않은 세계에서 그들은 그렇게 믿고 싶어 하는 듯도 보였다. 다직해야 더께처럼 결백치 못할 그의 이야기가 소소한 말장난에 그쳤던 것에 반해 레드그레이브의 언어는 진실이 되었고 규칙이 되었다. 배양된 생명체가 있었고 갈빛 머리의 소녀가 있었고 차분한 미소를 띤 여인이 있었다. 그들은 갇혀버린 머릿속에서 수없이 상처받고 수없이 괴로워 한다. 그곳에는 언제나, 또한 소년이 있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바란 것은 그녀의 연인이 존재치 못할 세계였다. 셋은 좋지 못해. 그와 그녀가 이루어질 수 있는 세계가 아닌. 그것이 극단이었고 오판임을, 그 가능성을 찾아 헤맨 메르키오르 그 자신조차 자각할 수 있었다. 행복해질 수 없어. 이루어질 수조차 없잖아. 그는 레드그레이브의 발치에서 어리광부렸고 그녀만이 미미하게 웃었다. 아니야.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어. 끝끝내 그녀는 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 세계에서는 으레 비극이 일어나곤 했음을 메르키오르는 알고 있었다. 메르키오르? 야살스러운 체 레드그레이브가 장난스러이 웃었고 메르키오르는 고개를 들었다. 참없이 망쇄하는 세계가 그곳에 있었다. 이건, 분명한 잘못이야. 균형이 어긋나고 말아. 메르키오르. 과오를 모집는 목소리는 결코 매몰차지 않았다. 되려 상냥하고 하나한 친절을 품고 있다. 그것이 가장 그를 비참케 하는 것이었다. 레드그레이브. 메르키오르는 자신이 울고 있다고 생각했다. 왜 그래? 대답. 돌아오는 대답. 네 목울대를 타고 흐르는 목소리. 또다시 네가 죽었어. 그는 자수했다. 그럴 리가. 그래서 나는 너를 대신할 존재를 찾고 싶었어. 저런. 나즉한 목소리로 그녀가 웃는다. 밤꾀꼬리가 지저귄다. 하얀 침상 위 식어버린 몸뚱어리가 한스럽다. 그곳에는 그라이바흐가 없어. 그렇다면 그건 이 세계겠구나. 레드그레이브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까무룩 죽어가는 듯, 검고 검은 잎사귀가 바람에 너울거리듯 파르르 그녀의 입가의 미소가 떠오른다. 여전히 아름답다. 메르키오르는 다시금 더듬대며 입술을 연다. 그리고 내가 바라는 것도 없어.  아아, 메르키오르…… ─눈을 감은 후 지금의 나 또한 없어지는 게 아닐까. 그러니 그녀는 또다시 그 말에 서글프게 웃었다. 그라이바흐는 무엇을 듣고 있을까. 아니, 그는 존재치 않을 터였는데, 분명. 분명히. 레드그레이브는 꼭 그를 알고 있는 것처럼 굴었다. 메르키오르는 그녀의 품속을 파고들었다. 너절하게 늘어뜨린 두 팔이 제 것 같지 않았다. 눈을 감은 여인의 옆모습에 수심 깊은 정적이 맴돌고 메르키오르는 그녀의 코 아래 손가락을 대 숨결을 느끼었다. 충족되지 못할 서글픔만이 그의 얼굴 그득했다. 스테이시아. 네. 내가 없을 가능성을 찾아줘. 스테이시아는 말이 없다. 고독한 가능성을. 저주받을 가능성을 찾아줘. 나를 사장시켜. 그녀만이 존재하는 세계를 찾아내. 메르키오르는 딱딱한 베개에 고개를 처박았다. 그녀만이 존재하는 세계에 나를 묻어. 그녀의 발치에. 그녀의 결 고운 머리채 위에. 나를 매달아줘. 그는 계속해 중얼거린다. 레드그레이브를 보고 싶어. 이런 가짜가 아니야. 모든 것을 아는 그녀가 보고 싶어. 길을 바라. 레드그레이브. 스테이시아는 기계적으로 이어지는 그의 말에 대답만을 반복했다. 네. 네. 네. 네. 네. 메르키오르는 눈을 감았고 레드그레이브는 개면한다. ……─메르키오르? 소용돌이치듯 그들은 침잠했다. 메르키오르는 그것이 죽음이라고 생각했다. 수많은 죽음 속에서도 그는 레드그레이브를 포기하지 못했다. 그것은 비참한 동화였고, 그녀를 향한 서정적 염오였다. 응. 메르키오르는 다만 중얼거렸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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